그날의 경제 뉴스운전하며 읽는 시: 길가의 버마셰이브 광고
1926년, 미네소타의 국도 옆에 작은 빨간 표지판들이 줄지어 섰다. 차를 몰고 지나가면 한 장씩 시가 이어졌고, 마지막 표지판에는 면도 크림 이름이 적혀 있었다.
꼭 100년 전 오늘, 돈의 눈으로 본 세상 다섯 가지

부엌일을 하던 아내는 자주 손을 베었다. 남편은 아내가 혼자서도 상처에 붙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테이프 위에 거즈를 붙인 그 작은 발명이 1920년대 미국 집집마다 들어갔다.
그날의 경제 뉴스1926년, 미네소타의 국도 옆에 작은 빨간 표지판들이 줄지어 섰다. 차를 몰고 지나가면 한 장씩 시가 이어졌고, 마지막 표지판에는 면도 크림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금과 시장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동전에 한 단어를 새겼다. PEACE. 1926년, 사람들은 이 묵직한 은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오늘 그 안의 은만 해도 액면가의 약 39배다.
석유와 산업자동차 여행이 늘자 한 건축가가 생각했다. 운전자가 차를 바로 방 옆에 세우고 잘 수 있는 숙소를 만들자. 1925년 말 캘리포니아에 문을 연 그 숙소에 '모텔'이라는 새 이름이 붙었다.
서민의 지갑1926년 11월, 미국 곳곳의 가정에 은행 수표가 도착했다. 지난 1년 동안 매주 조금씩 모은 크리스마스 선물 돈이었다. 1센트부터 시작할 수 있는 저금이었다.
1891–1982 · 불타 버린 가게를 형제의 손으로 다시 세운 사람
1910년, 열여덟 살 청년이 그림엽서가 든 구두 상자 두 개를 들고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기차역에 내렸다. 숙소인 YMCA까지 마차를 탈 돈도 없었다. 그는 발로 뛰며 가게들에 엽서를 팔았고, 곧 형 롤리가 동생 곁으로 와 함께 일했다. 엽서 장사가 시들해지자 형제는 생각을 바꿨다. 사람들이 엽서보다 봉투에 넣어 보내는 카드를 더 원한다는 것을 읽고, 밸런타인 카드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기 시작했다. 형제는 가게 이름을 ‘홀 브라더스’라고 지었다. 1915년 1월 11일, 불이 나서 사무실과 물건이 모두 탔다. 남은 것은 금고 하나와 1만 7,000달러의 빚이었다. 혼자였다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제는 서로를 붙잡고 위기를 거꾸로 생각했다. 남이 만든 카드를 받아 팔다가 다 잃었다면, 이번에는 직접 만들자. 그들은 인쇄기를 사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을 전하는 카드를 스스로 찍기 시작했다. 이 작은 형제 회사가 훗날의 홀마크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가난은 나에게 엄청난 박차였다. 처음 시작할 때 오히려 많은 사람보다 유리했다."
1926년의 토요일, 사람들은 반창고 한 장, 길가의 시 한 줄, 매주 넣은 1센트로 서로를 챙겼다.— 윙크하이 편집부